이순신 대첩 순서 3대 대첩 한산대첩 명량해전 노량해전 죽음 전사 대첩

이순신 대첩 순서 3대 대첩 한산대첩 명량해전 노량해전 죽음 전사 대첩 에 대해 알아보겠습니다.

이순신 장군의 한산대첩을 배경으로 한 영화 ‘한산’이 최근에 개봉되면서 다시 한 번 이순신 장군의 전투들이 관심을 받고 있습니다.

영화 ‘한신’ 전에는 2014년 최민식 주연의 ‘명량’이 개봉을 하기도 했었는데요. 이순신 장군의 대첩을 정리해보았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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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순신 대첩 순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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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순신 3대 대첩 순서

이순신 장군의 주요 해전은 한산대첩, 명량대첩, 노량해전이 가장 유명하며 옥포해전, 당포해전, 부산포해전에서도 승리를 거뒀습니다.

이순신 장군의 대첩을 순서대로 정리하면 옥포해전 – 당포해전 – 한산대첩 – 부산포해전 – 명량대첩 – 노량해전 순 입니다.

이중 이순신 대첩으로 불리는 대첩은 한산대첩, 명량대첩, 노량해전 입니다.

이순신 3대 대첩 정보는 아래에서 확인하실 수 있습니다.

한산대첩

한산대첩은 견내량대첩(見乃梁大捷)으로도 알려진 임진왜란 중 벌어졌던 이순신의 승전 중 하나로 행주대첩, 진주대첩과 함께 임진왜란 3대 대첩으로 알려져 있습니다.

또한 흔히 을지문덕의 살수대첩, 강감찬의 귀주 대첩과 함께 한국사 3대 대첩이라 불립니다.

임진왜란의 전황이 바뀌는데 결정적인 공헌을 한 전투중 하나로 이 한산 해전에서 승리하면서 평양까지 승승장구한 고니시 유키나가의 군이 추가 보급 및 병력 지원을 받지 못하여 평양성에 눌러앉게 되었습니다.

수군의 도움을 받지 못하니 전라도를 공격하는 왜군의 움직임도 둔화될 수 밖에 없었습니다. 명칭은 한산도 대첩으로 굳어졌지만 당시에는 한산 해전이 아니라 견내량 해전으로 불렸다.

한산도를 기점으로 싸운게 아닌, 견내량에 정박중인 왜군을 꾀어다가 한산 앞바다에서 수몰시킨 전투의 개요를 생각하면 한산도 대첩이라는 말보다는 견내량 해전이라고 보는게 더 옳은 표현일 수 있습니다.

다른 해전들에 비해 군사학적으로 가치가 높은 전투입니다. 해상에서의 포위섬멸전을 이 정도로 정교하게 선보인 전투는 세계사적으로도 드물기 때문입니다.

한산대첩 정보는 아래에서 확인하실 수 있습니다.

명량해전

명량해전은 정유재란 당시 명량수도에서 벌어진 해전입니다. 한산도 대첩, 노량 해전과 함께 충무공 이순신의 3대 해전으로 꼽힙니다.

이 해전은 조선 수군 13척과 일본 수군 133척 이상이 맞붙어서 고작 13척이었던 조선 수군이 승리한 전투로, 그야말로 기적과 같은 승리로 끝났기에 역사가들이 “정면에서 맞붙어 박살냈다”고 한결같이 말하는데도 오히려 사람들이 이를 믿지 못하고 왜곡된 가설들을 믿고 있는 전투이기도 합니다.

심지어 초요기를 올려 안위의 배가 다가오기 전까지 이순신은 대장선 한 척으로 다가오는 모든 적선을 박살내며 버티고 있었습니다.

명칭을 생각보다 잘못 쓰는 사람이 많은데, 명랑(朗) 해전이 아니라 명량(梁) 해전이 올바른 표기입니다.

애초에 앞의 ‘명’자도 ‘밝을 명'(明)이 아니라 ‘울다 명'(鳴)입니다. 명량의 순우리말이 널리 알려진 울돌목인데, 명량은 우리말 지명의 뜻을 한문으로 옮겨 적은 것입니다.

한자로 울 명자에 들보 량자를 썼다. 노량, 견내량 등에도 쓰이는 梁은 제방 등 좁은 수로를 표현하는 데에 쓰입니다.

명량해전 정보는 아래에서 확인하실 수 있습니다.

노량해전

노량해전은 임진왜란의 막바지인 1598년 12월 벌어진 조선-명 연합군과 일본 사이에서 벌어진 해전입니다.

이순신의 생애 마지막 전투이자 그가 전사한 전투로서 유명합니다. 또한 임진왜란을 사실상 마무리짓는 전투라는 의미도 갖습니다. 하지만 조명 연합군과 왜군 양측 모두에게 절반의 성공이라는 의미가 있습니다.

조선 측에선 엄청난 격차로 전쟁에선 이겼으나 정작 일본 수뇌부들은 주변에서 달려온 일본군 구원 병력과 싸우는 틈을 타서 도망치는 데 성공하였기 때문에, 전투의 가장 큰 목적인 수뇌부 몰살은 달성하지 못해 절반의 성공이라 할 것이며, 일본의 입장에서는 왜란에서 벌어진 해전 사상 최악의 피해를 입긴 했으나, 어쨌든 자신들의 기본 목표인 주요 장수의 철수에는 성공했기 때문에 절반의 성공이었다고 할 수 있습니다.

노량해전 정보는 아래에서 확인하실 수 있습니다.

이순신 장군 죽음 전사

노량 해전은 쉽지 않은 해전이었습니다.

야간 해전에다 이미 전략적으로 역으로 포위당해 불리한 상황이었고 함선도 부족했을 뿐만 아니라 전장은 좁아서 백병전을 하는, 지금까지 볼 수 없는 상황이 벌어졌습니다.

이것은 이순신이 결코 의도한 상황이 아니었습니다. 그러한 상황에서도 잘 훈련된 조선 수군과 명의 연합군은 치열한 전투를 벌여서 기어코 승리를 이루어냈습니다.

노량 해전은 워낙 치열해서 대장선에 탄 진린과 이순신이 위급할 때 서로 구원할 지경이었습니다. 그러나 접전 끝에 결국 조명 연합군은 승리하고 이순신은 전사했으며 전쟁이 끝났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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